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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월간 커피&티] 제주에 의한 카페, Lazy Box



월간 Coffee&Tea

제호처럼 커피와 티 전문지이자 올해 창간 15년차를 맞는 중견 잡지사 입니다. 매달 산업 전반의 소식과 각 영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 카페 소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 본 포스팅의 저작권은 월간 Coffee&Tea에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제주에 의한 카페, Lazy Box




산방산으로 시작한 이야기니, 좀 더 해보겠다. 산방산은 남제주의 랜드마크로서, 한라산만큼이나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기에 적당하다. 용머리해안을 앞자락에 두면서 가깝게는 형제섬을, 날씨가 좋은 날엔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내다볼 수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산방산의 동생뻘 이라고 할 수 있는 송악산까지 시원하게 보이니, 제주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포인트 중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용머리해안이라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다. 바다로 향하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해안은 뒤쪽의 산방산으로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 한 마리의 용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용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형제섬인데, 이야기에 따르자면 이 섬이 용의 여의주라는 것이다.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바다로 미끄러지는 용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앞바다 에는 또 하나의 용이 있었으니, 바로 송악산이다. 하나의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한 두 마리의 용의 경쟁.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에 담겨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용이 탐낼만한 것이 고작 형제섬 하나였을까. 이 풍경을 표현하자면 ‘그림 같다’라는 말 밖에는 더 붙일 것이 없다. 풍경을 안주 삼았다는 시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의 카페 위치가 과거에는 막걸리에 파전을 구워 팔던 곳이었다고 하니, 이 풍광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였던 주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좋은 풍광을 끼고 카페가 들어 앉았으니,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주로 카페를 이용했던 편안한 복장의 투숙객들이 찾아오는 외부손님들과 만나면서 민망한 상황이 생겨났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주차공간 같은 편의시설이 부족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불편 아닌 불편을 겪어야 되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카페를 분리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녀에게 이 훌륭한 전망과 경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편의 요소들을 해결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게스트하우스로부터 출퇴근 시간이 20여분 정도라는 장점이, 이 자리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카페가 오픈한지 6개월, 1년의 절반정도를 지내면서 매일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지내니, 왜 이 곳이 좋은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한적해 보이는 카페지만, 이것을 운영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지칠 때가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담이다.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이 순간을 끙끙 앓으면서 버텨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바다를 보며 쉼으로 풀어낼 수 있어서 힘들지가 않다고 한다. 바다를 본다는 일은 바다의 넉넉함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나면서 가장 멋졌던 바다를 꼽으라면 언제였는지 물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하는 게 바다라는, 어디서 들어봤던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서, 태풍이 왔던 가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태풍이 불어왔다. 해안가에서 꽤 떨어진 지역이라 괜찮을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퇴근 후에 다시 카페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 때 창 너머에서 바람에 휘몰아치는 파도의 모습이 그렇게 멋졌다고 한다. 의외로 지역 주민들도, 태풍이 불어올 때 산방산에 올라와 바다를 감상한다고 하니, 안전하기만 하다면, 카페에 앉아 격렬한 바다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LazyBox 카페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리를 꼽으라면, 역시 바다를 볼 수 있는 창가자리이다. 액자와 같은 프레임 안에 담겨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창가 밑에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준비돼 있어서, 각자가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기에 적당하다. 카페를 찾는 누구나 탐낼만한 자리이기에, 특별히 한적한 시간이 아니고서야 늘 누군가가 앉아있다. 혹시나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한다 해도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 창가의 프레임 안에 가득한 파란바다와 하늘의 풍경도 좋지만, 커피 한잔과, 사람의 실루엣이 비춰지는 장면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으니. 




LazyBox 카페에는 바다를 향한 창가자리 말고도 특별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는 작은 연못인데,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으로 조성돼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고, 주변에는 살아있는 풀들과 꽃들이 심겨져 있어서 제법 운치가 느껴지는, 일종의 정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리 예쁜 조화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연못이 예쁘다며 칭찬을 건네니 하씨는 연못 주변의 잔디니, 풀들은 새로 꾸민 것이 맞지만, 화산석과 연못의 물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것들이라고 설명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카페를 준비하면서 내부정리를 하고 있던 중에 구들장 아래에 숨어있던 돌들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모두 깨서 매끈한 바닥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것도 어찌보면 산방산의 일부인데, 산방산의 등에 탄 것도 모자라, 그것을 기어이 쪼아서 상처를 내야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모양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실내에 연못을 만드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 역시도 산방산에서 흘러나오는 것인데, 철마다 그 수량이 다르고, 겨울이면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결국 LazyBox는 산방산 위에 있기도 하지만, 산방산을 품은 카페도 됐다. 인테리어 측면에선 오히려이 결정이 영민한 대처인 것 같기도 하다. 화산석의 거친 느낌 때문인지, 제주도만의 색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LazyBox의 마스코트는 달팽이라고 한다. 그 느릿한 모습이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천천히 자기가 갈 길을 묵묵하게 가는 모습이다. 타인에 의해 강제되는 속도로부터의 벗어남과 쉼. 그러보니 달팽이의 몸통이 커다란 쉼표이다. 




철저히 제주도의 속도에 맞춰진 삶은, 분과 초를 나누던 일상에 비하면 아마도 게으름에 카페를 오픈하면서 마음먹은 하민주씨의 바람 중 하나는 ‘제주에 의한’ 카페이다. 장소만 제주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느낌과 맛을 담을 수 있는 카페인 것이다. 제주산 당근으로 만들어진 당근 머핀과 케이크가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메뉴 중에 하나이다. 녹차 역시 유기농 농사법으로 유명한 제주의 초록모루 제품을 이용한다. 아직은 많은 메뉴에 반영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주산 과일 등을 찾으면서 메뉴에 추가 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록 제주산은 아니지만, 공정무역 커피와 페루의 정직한 핫초코, 유기농 설탕 같이 다른 재료들 역시 착한 구석이 있다. 





Editors P.S. 

메뉴 중에 레이지박스 다방커피라는 메뉴가 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에스프레소니, 아메리카노니 하는 복잡한 커피 이름을 못 알아 들으셔서, ‘달달한 커피’ 한 잔 드리겠다고 대접하던 것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맛이 꽤나 궁금해진다. 또 곳곳에 직접 만든 소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빈말이 아니라 남자인 내가 봐도 너무 예쁘더라. 제주도엔 선물꺼리가 없다고 불평거리는 이들에게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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