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Coffee&Tea
제호처럼 커피와 티 전문지이자 올해 창간 15년차를 맞는 중견 잡지사 입니다. 매달 산업 전반의 소식과 각 영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 카페 소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 본 포스팅의 저작권은 월간 Coffee&Tea에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제주에 의한 카페, Lazy Box
산방산으로 시작한 이야기니, 좀 더 해보겠다. 산방산은 남제주의 랜드마크로서, 한라산만큼이나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기에 적당하다. 용머리해안을 앞자락에 두면서 가깝게는 형제섬을, 날씨가 좋은 날엔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내다볼 수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산방산의 동생뻘 이라고 할 수 있는 송악산까지 시원하게 보이니, 제주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포인트 중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카페가 오픈한지 6개월, 1년의 절반정도를 지내면서 매일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지내니, 왜 이 곳이 좋은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한적해 보이는 카페지만, 이것을 운영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지칠 때가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담이다.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이 순간을 끙끙 앓으면서 버텨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바다를 보며 쉼으로 풀어낼 수 있어서 힘들지가 않다고 한다. 바다를 본다는 일은 바다의 넉넉함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나면서 가장 멋졌던 바다를 꼽으라면 언제였는지 물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하는 게 바다라는, 어디서 들어봤던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서, 태풍이 왔던 가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태풍이 불어왔다. 해안가에서 꽤 떨어진 지역이라 괜찮을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퇴근 후에 다시 카페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 때 창 너머에서 바람에 휘몰아치는 파도의 모습이 그렇게 멋졌다고 한다. 의외로 지역 주민들도, 태풍이 불어올 때 산방산에 올라와 바다를 감상한다고 하니, 안전하기만 하다면, 카페에 앉아 격렬한 바다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LazyBox 카페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리를 꼽으라면, 역시 바다를 볼 수 있는 창가자리이다. 액자와 같은 프레임 안에 담겨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창가 밑에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준비돼 있어서, 각자가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기에 적당하다. 카페를 찾는 누구나 탐낼만한 자리이기에, 특별히 한적한 시간이 아니고서야 늘 누군가가 앉아있다. 혹시나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한다 해도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 창가의 프레임 안에 가득한 파란바다와 하늘의 풍경도 좋지만, 커피 한잔과, 사람의 실루엣이 비춰지는 장면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으니.
LazyBox 카페에는 바다를 향한 창가자리 말고도 특별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는 작은 연못인데,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으로 조성돼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고, 주변에는 살아있는 풀들과 꽃들이 심겨져 있어서 제법 운치가 느껴지는, 일종의 정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리 예쁜 조화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 LazyBox는 산방산 위에 있기도 하지만, 산방산을 품은 카페도 됐다. 인테리어 측면에선 오히려이 결정이 영민한 대처인 것 같기도 하다. 화산석의 거친 느낌 때문인지, 제주도만의 색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LazyBox의 마스코트는 달팽이라고 한다. 그 느릿한 모습이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천천히 자기가 갈 길을 묵묵하게 가는 모습이다. 타인에 의해 강제되는 속도로부터의 벗어남과 쉼. 그러보니 달팽이의 몸통이 커다란 쉼표이다.
철저히 제주도의 속도에 맞춰진 삶은, 분과 초를 나누던 일상에 비하면 아마도 게으름에 카페를 오픈하면서 마음먹은 하민주씨의 바람 중 하나는 ‘제주에 의한’ 카페이다. 장소만 제주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느낌과 맛을 담을 수 있는 카페인 것이다. 제주산 당근으로 만들어진 당근 머핀과 케이크가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메뉴 중에 하나이다. 녹차 역시 유기농 농사법으로 유명한 제주의 초록모루 제품을 이용한다. 아직은 많은 메뉴에 반영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주산 과일 등을 찾으면서 메뉴에 추가 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록 제주산은 아니지만, 공정무역 커피와 페루의 정직한 핫초코, 유기농 설탕 같이 다른 재료들 역시 착한 구석이 있다.
Editors P.S.
메뉴 중에 레이지박스 다방커피라는 메뉴가 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에스프레소니, 아메리카노니 하는 복잡한 커피 이름을 못 알아 들으셔서, ‘달달한 커피’ 한 잔 드리겠다고 대접하던 것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맛이 꽤나 궁금해진다. 또 곳곳에 직접 만든 소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빈말이 아니라 남자인 내가 봐도 너무 예쁘더라. 제주도엔 선물꺼리가 없다고 불평거리는 이들에게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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