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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퍼스] 부산센터, 검은 바다의 친절한 안내자 (2) - 마리스텔라 로스터스

[커퍼스] 부산센터, 검은 바다의 친절한 안내자 (1) - 마리스텔라 로스터스



노력과 신념을 인정받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커피에 뛰어든 지는 그리 길지 않다. ‘업력=실력’ 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 아래에서 그의 길지 않은 업력은 종종 약점 아닌 약점이 되곤 했다. 이 대표의 실력을 떠보려 찾아오는 커피인들과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일상이었다. 이 대표에게 교육을 받고서도 그 사실을 숨기기 바쁜 기존의 커피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이 대표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커피에만 매진했다. 







좀처럼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대표였지만, 지난 2015년은 대외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브루어스컵 국가대표선발전(KBrC), 마스터오브커핑(MOC), 코리아바리스타챔피언십(KBC), 로스터스챔피언십, 컵테이스터스오브챔피언십 등 각종 커피대회에서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직접 선수로도 참가해 좋은 성과를 이뤘다. 


또한 커피엑스포와 같은 전시회 등에서는 교육 세미나를 주관하면서 많은 커피인들과 소통했으며, 커피프랜차이즈인 핸즈커피의 요청으로 본사 직원들의 커핑 교육을 담당하면서 커피회사와 협업도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5월에는 르완다 산지까지 방문했으니,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여러 활동 중에서도 2015골든커피어워드 수상은 더욱 의미가 특별했다.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을 인정받은 순간이었어요. 가장 힘이 되었던 일이었죠.” 이 대표의 유난스러운 핸드픽 때문에 다른 커피인들로부터 염려와 질타가 많았다. 네 번의 핸드픽을 거치면서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가 상당한 것은 물론이요, 결점두를 덜어낼수록 비용면에서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핸드픽의 고된 작업 과정 때문에 이 대표 역시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지켜온 신념을 남에게 평가받는 것도 쉬울 리가 없었다. 결과에 따라서 지금껏 해온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게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어디쯤 와 있는지도 알고 싶었죠.”


이 대표는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지만, 대회만을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은 없었다. 평소대로 했을 뿐이었는데 에스프레소, 하우스블렌드 두 개 부문에서 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한 부문에 100여개의 가까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차지한 값진 수상이었다.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그동안의 일들이 생각나면서 울컥하더라구요(웃음).” 박 로스터 역시 감회가 남다르다. “네 번이나 핸드픽을 한다는 건 그만큼 커피에 대한 애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심사위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 대표의 최근 2년은 ‘다사다난’했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뜻밖의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2014년에는 태풍이 몰려와 살고 있던 아파트의 옹벽이 무너졌다. 옹벽이 복구되기 전까지 안전 문제로 인해 커피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커피랩마저 물에 잠겼다. 자동차는 침수돼 폐차했고, 안에 있던 기물들도 대부분 못쓰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 고대하던 새로운 커피랩 오픈을 앞두고도 문제가 있었다. 


앞선 악재들과 SCAA(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아카데미 인증 때문에 몇 번이나 오픈이 미뤄졌던 커피랩이었다. 가까스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픈을 준비하던 차였는데, 또 다시 수도 펌프가 터지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옆 회사가 침수된 것도 모자라, 넘치던 물은 복도로 흘러나와 엘리베이터까지 침수됐다. “새벽 내내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서 울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나’ 싶었죠(웃음).” 지난 1월, 새로운 커피랩에서 치러진 큐그레이더 시험은 그만큼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힘들 때도 많지만 이 대표는 지금 이 상황이 감사할 뿐이다. “첫 카페에서 머물렀다면 아마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주했을 거예요.” 커피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왔으니 트렌드를 읽거나 좋은 커피를 선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를 넘어 직접 해외 산지를 다니며 수백 종의 커피를 맛보고 연구하는 지금과는 분명 다른 수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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