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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퍼스] 제주센터, 보다 현실적인 커핑으로의 접근 (1) - 커피코알라



커퍼스 센터 소개

커퍼들의 모임, 커퍼스(cuppers.co.kr)의 의뢰로 진행된 센터 소개 기사 입니다. 현재 커퍼스는 한국커피품평협회(CCAK)로 확대하면서 커핑 관련 교육 및 전시, 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커퍼스 제주센터, 커피코알라

보다 현실적 커핑으로의 접근



커피를 제조하는 로스터리카페에서의 커핑은 고객에게 서비스되는 최종 단계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두 본연의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장단점을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일이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로스팅이 있다. 샘플 로스팅부터 프로덕션 로스팅까지 이어지지만 단계의 구분은 명확한 편이다. 커핑은 반드시 샘플 로스팅으로만 해야 하고, 프로덕션 로스팅은 그 다음이다. 경우에 따라 그 간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좀 더 자연스러운 흐름은 불가능한걸까? 샘플 로스팅이 아닌 프로덕션 로스팅으로 커핑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커퍼스 제주센터 커피코알라를 찾았다.



끈기, 열정 그리고 오기로 일궈낸 제주도 정착기


이제는 제주도의 커피인으로 잘 알려진 커피코알라의 추영민 대표는 부산 출신이다. 사업이 하고 싶어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정착했다.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에 소개된 적 없는 먹거리라면 적당하겠다 싶었다. 섬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한계로 보지 않고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아이템을 물색하던 중 눈에 띈 것은 바로 ‘번(bun)’. 번은 한때 국내에 수많은 유사브랜드를 양산해 냈을 만큼 인기가 많았던 아이템으로, 특히 함께 제공되는 커피와의 궁합이 좋은 편이었다. 


커피는 어느 정도 검증된 사업이어서, 번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전망이 좋아보였다. 그러나 추 대표는 결국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로 노선을 바꿨다. 안정적인 운영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내비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후 10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커피코알라를 오픈하게 됐다. 



고향까지 떠나면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잘 꾸려야한다는 마음이 누구보다 컸기에, 아무래도 커피를 배울 필요가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커피학원이었다. 바리스타 과정을 마칠지음 나름의 자신감도 생겼다. 사업에 필요한 전부를 배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없는 걸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바리스타 과정은 누구나 갖고 있더라구요. 그때 SCAE(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를 알게 되었죠.” 


당시 국내에서 SCAE 자격증 교육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다. 한두 군데에서만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 대표는 교육이 있을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가야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은 물론이고, 매장까지 비우는 부담을 감수했다. 기왕 투자하는 김에 로스팅도 배우기로 했다. 아침엔 방배동으로 가서 에스프레소 교육을 받고, 끝나면 홍대로 이동해 새벽까지 로스팅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커피를 공부하면서 추 대표의 삶에는 ‘커피’라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큐그레이더까지 영역을 넓혔다. 당시 국내에는 이제 막 소개가 되던 때여서 큐그레이더를 따기 위해 미국으로 가야했다. “함께 준비했던 분들이 18명 정도 됐는데,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됐어요. 재밌는 일도 많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죠.” 



커피에 대한 지식은 풍부해지고 열정은 뜨거워져 갔지만, 이런 것과 실제 카페를 운영하는 일은 또 다른 영역의 문제다. 생전 처음 카페를 열었던 만큼, 초보 사장으로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오픈 초기에는 지금처럼 직접 로스팅을 하지 않고 원두를 납품받아 썼다. 어느 날 추 대표는 납품업체에게 커피를 ‘갈아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드립을 해보려는데 드립용 그라인더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추 대표는 웃지 못할 일이었다고 소회한다. 한동안 좌충우돌 하며 초보 사장의 분투기가 이어졌다.


매장 운영도 쉽지 않았지만 환경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섬은 조금 배타적일 수밖에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아픔이 있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협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지역 커피인들 속에서 외인 취급을 받으며 속상한 일도 많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하루는 커피모임이 있어서 참석했었는데 한참 무시당했었죠. 그때만 해도 커피에 대한 아무런 스펙도 없었거든요. 끝나고 나오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리더라구요.”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처량함도 진했다. “그때부터였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무조건 열심히 해서, 제주도에서 커피하면 추영민 그리고 커피코알라가 떠올릴 수 있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맛있는 커피를 목표로 다른 곳은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추 대표를 수식하는 경력이나 스펙은 그저 자연스럽게 따라올 뿐이었다.






※ 기사량이 많은 관계로 나눠서 포스팅합니다. (2), (3)으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