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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퍼스] 김해센터, 커피로 부르는 희망가 (1) - 카페 고운동



커퍼스 센터 소개

커퍼들의 모임, 커퍼스(cuppers.co.kr)의 의뢰로 진행된 센터 소개 기사 입니다. 현재 커퍼스는 한국커피품평협회(CCAK)로 확대하면서 커핑 관련 교육 및 전시, 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커퍼스 김해센터, 카페 고운동

커피로 부르는 희망가


불의의 사고로 삶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불행 앞에서 방황을 거듭했다. 하지만 커피를 만나면서 삶은 다시 희망을 싹 틔웠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커피가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커피를 나누고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커퍼스 김해센터, 카페 고운동을 찾았다



지하 37층에서 만난 커피


혈기왕성 했던 30대 초반, 카페 고운동의 김판수 대표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다 사고를 당했다. 생사의 위기를 넘나들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사고 후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꼼짝 없이 7년여를 보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죠.” 김 대표는 매일 절망과 싸워야 했다. 죽음까지 떠올리던 그 시간들은 지금도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가까스로 상태가 회복되면서 다시금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만큼 재기에 대한 바람이 컸다. 2년의 시간을 준비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기대만큼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상이 변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의 관계도 너무 몰랐다. 계속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공들였던 일이 무위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도의적인 책임까지 져야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이제 막 일어섰던 그에겐 가혹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를 ‘지하 37층’이라고 회상한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었다.


▶ 오후 햇살이 스며든 카페의 모습은, 노란 벽과 만나면서 따뜻하고 정겹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에 그의 주머니엔 몇십만원만 남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싫어져서 도시를 떠났다. 좋아하던 바닷가에서 한달만 더 살아보겠다며 동해로 향했다. “머리속에 있던 모든 걸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친구들이 가끔 들러서 작은 위로와 도움을 건넸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김 대표에게 태국행의 기회가 생겼다. 호주 유학시절 알았던 지인을 통해 태국 국제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한숨만 쉬고 있자니 뭐라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제의를 수락해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태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잠시 잊고 있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던 중 태국의 커피를 접하게 됐는데 김 대표는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이상하게 커피가 별로 맛이 없었어요. 생산지라는데도 말이죠. 한국에선 제법 맛이 있었거든요. 차라리 한국에서 커피를 배워서 태국에서 장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소비지에서 생산지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역발상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꼭 터무니 없지만은 않았다. 사업적으로 풀릴 만한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김 대표는 먼저 커피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나이까지 많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이곳저곳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책을 빌려다가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면 책과 기구를 사는데 썼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지식들이 쌓일수록 공부의 영역은 넓어졌다. 핸드드립을 공부하면서 로스팅이 궁금해졌고, 로스팅을 하다 보니 커피의 맛을 볼 줄 알아야겠다 싶어 커핑으로 이어졌다. 점점 커피에 빠져들수록 머릿속에선 태국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커피를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만 맴돌았다.


2년여를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았다. 이제는 혼자만의 공부가 아닌 커피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커피에 대한 열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큐그레이더 마지막 테스트는 돈이 없어 응시를 못했을 만큼 현실은 막막했다. 김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커피를 배우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고 해답을 얻는다. “‘공부를 하면서 준비해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 온다는 말씀이셨죠.” 용기를 얻은 김 대표는 더 열심히 커피공부를 위해 힘썼다. 하루에 16시간 하는 고된 아르바이트와 커피공부를 하면서 마지막 시험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큐그레이더를 딴 후에는 친구의 카페 옆에 작은 공간을 얻어 작업실을 열었다. 샘플 로스터기 하나를 들고 나름의 연구를 시작했다. 하루에 10시간씩 로스팅을 하며 커피를 공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업실을 오가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며 커피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면서, 학교나 단체 등에서도 커피 강의 요청이 잇따랐고 열심히 강의를 다녔다. “준비를 하니까 정말 기회가 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기까지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지금도 늘 생각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커피를 하고, 그 커피로 여러 가지 또 다른 일들을 할 수 있구나. 참 잘된 것 같아요.” 


이후 크고 작은 기회들이 이어졌던 김 대표는 김해 커피교육센터(달카페바리스타 학원)와 카페 고운동까지 운영하며 커피 교육과 보급에 힘쓸 수 있었다. 한편, 자신의 위치에서 꾸준히 커피를 공부하고 준비해왔던 김 대표의 노력은 올해 의미 있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교육센터를 더 좋은 자리에 마련하였고, 2015년골든커피어워드에서는 하우스블렌딩 부문을 수상을 하며 기쁨을 더했다. 카페 역시 단골 손님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순항 중이다.



※ 기사량이 많은 관계로 나눠서 포스팅합니다. (2), (3)으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