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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월간 커피&티] 찾는 이마다 시인이 되는 곳, 시인의 집



월간 Coffee&Tea

제호처럼 커피와 티 전문지이자 올해 창간 15년차를 맞는 중견 잡지사 입니다. 매달 산업 전반의 소식과 각 영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 카페 소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 본 포스팅의 저작권은 월간 Coffee&Tea에 있습니다. 




바다와 예술인들과의 관계는 밀접하다. 끝없이 펼쳐지고, 한없이 깊은 바다의 무한함은 그들의 영감을 일깨우고, 자극한다. 때로는 바다에 자아를 던지며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하고, 때로는 바다라는 자연의 위엄 앞에서 철저히 객관화 된 자신을 비춰본다. 바다를 보며 사색하는 그 시간들은 그들의 영감에 스며들며, 새로운 창조의 씨앗을 심어낸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우는 통영에서 윤이상, 김춘수, 전혁림 등의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된 이유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는 제주도도 예술인들에게 남다른 곳으로 여겨진다.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서양화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1년을 추억하며 그림을 몇 점 남겼는데, 거의 대부분의 그림에 푸른 바다가 그려져 있다. ‘서귀포의 환상’이라는 제목처럼,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장면에는 서귀포의 앞바다도 함께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주변에는 해안도로 같은 인위적인 개입이 없어요. 원시적인 풍경이죠. 숨어있는 장소라고 볼 수 있어요. 지나가다 우연찮게 발견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카페라는 말을 덧붙이는  손시인이다. 카페의 바다는 야트막하게 세워진 돌담 너머로 펼쳐져있다. 주변에 있는 일반 가정집들도 작은 돌담들이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대단한 풍경은 아니지만, 각자의 앞마당을 인심 좋게 나눠 쓰는 것 같아 정겹다.



앞서 이야기 했던 많은 예술가들처럼, 손시인 역시 1년 간 겪은 조천의 바다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내가 끼어들 곳이 없어요. 객관적으로 나의 작음이 드러나게 되죠”자신의 생을 통틀어서 가장 온화한 성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수줍게 이야기한다. 내면의 변화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조천의 바다는, 예술의 영감을 주는 존재를 넘어서서, 성찰과 구도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인만큼 온 벽면이 시집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시집들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풍스러운 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시집이다. 겉표지부터 만듬새가 예사롭지 않다. 한 페이지가 양면으로 인쇄돼 있지 않고, 한 장에 각각 따로 인쇄해 반으로 접어서 한 장을 꾸며놨다. “손으로 글씨를 만져보세요. 글자가 만져질거에요” 손으로 만져보니, 연필을 꾹꾹 눌러쓴 것처럼 오돌토돌한 글씨가 느껴진다.



활판인쇄라는,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인쇄방식으로 만들어낸 시집이다. 80년대 컴퓨터를 통해 출력되는 오프셋 출판이 시작되면서 자취를 감춘이 인쇄술은, 납 활자를 만들어서 잉크를 묻혀 제작하는 전통 인쇄방식이다. 활자를 만들어내는 주조, 식자, 인쇄, 제본까지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시간과 에너지가 보통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게 된 이유도 그것에 있지만, 오프셋 인쇄에 비해 훨씬 뛰어난 보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활자의 수명이 있기 때문에 500권 한정이라는 희소성의 가치도 분명히 있지만, 이 시집이 더 특별한 이유는, 저자들의 메시지와 사인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다른 시집들도 꺼내보니 그 앞에는 짧게 서명만 들어간 것부터, 손 시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한 장 가득하게 적혀있는 시집들이다.


‘연탄재 함부로차지마라’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처럼 유명한 시인들의 자필을 감상 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이다. 물론 시가 훌륭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바다의 존재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손시인의 마음이다. 글을 적어내는 일이 당연한 그녀지만, 찾아오는 이들 역시도 감성의 촉을 세워 바다의 분위기에 젖어들기를 바란다고 한다. “카페 이름을 보고 못마땅해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자기가 시인입네 하는 티를 너무 내는 것 아니냐며. 제가 있어서 시인의 집이 아니라,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시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마음껏 이곳을 즐기고,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ditor's P.S.


가운데에 아주 큰 오디오가 놓여져 있다. 넬라판타지니, 시네마 천국이니 하는 음악들이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커피는 프랑스의 Pod 머신인 말롱고(Malongo)를 이용한다. 커피 말고도 식사도 가능하다. 크고 웅장한 랜드마크에 지쳤다면, 잔잔한 조천의 매력으로 쉼을 얻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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